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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한무숙 문학 세계 (18712)번 [텍스터의 서재] 
저자 : 이호규 외
출판사 : 새미    [출판사의 서재]
출간일 : 2000-10-10
분야 : 인문/사회 도서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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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 한무숙 문학 세계 / 출판사 : 새미
한무숙 작가에 대한 다양한 연구..한무숙 작가의 남다른 위대함을 알게 하는 책 18712 (★★★★☆)
글쓴이
흔적 날짜
2018.01.10 21:35:12 추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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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정(香庭) 한무숙(韓戊淑: 1918 – 1993) 작가는 서울의 양반 가문 출신, 잦은 병력(病歷), 여성 작가 등의 이유로 관심을 모은 작가이다. 지금은 여성 작가는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여성 작가는 드물었다. 작가는 상봉하솔(上奉下率)의 고역과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일과 후에 누워 벽에 종이를 대고 글을 썼다.

1942년 장편 ‘등불 드는 여인’이 ‘신세대’ 현상 공모에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한무숙은 창작활동을 하는 일과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 양자 사이에서 가능한 한 최선의 조화를 꾀하는 길을 선택했다.”(15 페이지)

한무숙 작가는 “생활양식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집안의 허례허식이나 악습에 불만을 표하면서도 집안 어른들이 주는 삶의 지혜나 미덕에는 공감하는 자세를 취”했다.(15 페이지)

우리나라 여성 작가들의 계보를 살펴보게 된다. 김명순(金明淳; 1896 – 1951), 나혜석(羅蕙錫: 1896 – 1948), 김일엽(金一葉: 1896 – 1971), 김말봉(金末鳳; 1901 – 1961), 박화성(朴花城: 1903 – 1988), 최정희(崔貞熙: 1906 – 1990), 강경애(姜敬愛: 1907 – 1943), 한무숙(韓戊淑: 1918 – 1993), 강신재(康信栽: 1924 – 2001), 박경리(朴景利: 1926 – 2008), 박완서(朴婉緖: 1931 – 2011),

한말숙(韓末淑: 1931 - ), 정연희(鄭然喜: 1936 - ), 김지원(金知原: 1942 – 2013), 남지심(南智尋: 1944 - ), 최명희(崔明姬: 1947 – 1998), 강석경(姜石景: 1951 - ), 양귀자(梁貴子: 1955 - ), 최윤(崔允: 1955 - ), 은미희(殷美姬: 1960 - ), 강규(1964 - ), 오수연(吳受姸: 1964 - ), 송은일(1964 - ), 정지아(鄭智鵝: 1965 - )...

한무숙은 어릴 적 병마로 얼룩진 시간을 보냈다. 여덟 살 아름다운 5월의 백주(白晝) 주일학교에서의 귀도(歸途)에 화교(華僑)의 장의(葬儀)를 통해 죽음의 장면을 보았다. 강렬한 충격이었으리라.

필자(이호규)는 그의 감수성이 죽음과 만났던 것은 그의 운명이었고 천형(天刑)이었고 천혜(天惠)였다고 말한다. 병고(病苦)와 사색(思索)과 탐독(耽讀), 이 셋이 한무숙이 문학에 닻을 내리는 데 모든 역할을 했다.(28 페이지)

한무숙은 부친과 부친의 친구의 술자리에서의 약속에 따라 싫은 결혼을 했다. 얼굴도 모르는 결혼이었고 시어머니 간병에 아기자기한 신혼 살림조차 허락되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만삭으로 시어머니 병간호에 첫 아이 출산 등을 치른 병약한 한무숙에게는 아프거나 힘들 때조차 쉴 공간, 아니 쉴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없었다. 한무숙은 “그래도 나는 열심히 살았다. 무슨 목표를 향해서가 아니다. 행복에의 의지라든가 희망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오히려 나는 철저하게 내 불행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자학에 열정을 쏟음으로써 냉소적인 역설의 독이 가득 찬 처절한 삶을 살고 있었다.”고 썼다.

한무숙이 작가가 된 과정은 하나의 소설 같다. 시댁은 가부장 질서가 엄격한 집안이었기에 여자는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그녀는 화장실에서 우연히 본 신문 쪼가리에서 1500매 분량의 장편 소설 공모 소식을 접한다.

남은 두 달, 그녀는 그림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한(恨)을 소설(‘등불 드는 여인’)을 쓰는 것으로 풀었고 결국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1942년 4월의 일이었다. 당시 이 소식은 남편만이 알고 있었던 비밀이었다. 한무숙은 1948년에는 국제신문사 장편 소설 공모에 ‘역사는 흐른다‘로 당선의 기쁨을 누렸다.

1970년 작가는 미국에 의학도로서 유학을 가 있던 둘째 아들 용기가 교통 사고로 사망하는 인생 최대의 슬픔을 겪는다.(용기는 의학도면서 국립극장에서 첼로 독주를 할 만큼 예술적 재능도 지닌 수재였다.)

1984년 한무숙은 말년의 대작 ’만남‘을 한국문학에 분재(分載)했다. 이명희는 작가가 민속의 풍속과 문화를 애지중지하며 그것을 인물과 구성에 옷을 입히듯 풀어놓은 이유는 무엇인지 풀이한다. 그것은 풍속과 문화의 지킴이란 이 민족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며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국토를 잃었지만 우리의 정신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작가 정신에 기반한다.(59 페이지) 이런 점이 ’역사는 흐른다‘에 명징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무숙 작가는 인간을 비참과 위대의 풀 수 없는 혼합, 모순, 끊임없는 갈등과 분열 속에 허우적거리는 존재라고 갈파한 파스칼의 말을 위대한 명구(名句)로 기억하면서 그 명언에서 인간의 한계와 위대함을 함께 보았다.(61 페이지)

1963년 발표작인 ’유수암(流水庵)‘은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가진 작품이다. 그것은 작가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한 여인의 인생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노력을 많이 들였기 때문이다. 작가가 우연히 마주친 한 노기(老妓)의 모습에서 충격을 받아 쓴 소설이다.

유수(流水)는 낙화유수(落花流水)의 준 말로 쇠잔영락(衰殘零落)을 비유하는 말이다. 그리고 떨어지는 꽃에 정이 있으면 흐르는 물에도 정이 있어 물이 꽃을 띄워서 흐를 것이라는 뜻으로 남녀 사이에 서로 그리워 하는 정이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또한 행운유수(行雲流水)의 줄임말로 일정한 형태가 없이 늘 변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한무숙은 수필에도 재능을 보였다. 김현주는 글쓰기는 저자가 자아를 표현하는 계기이자 자아를 구성하고 형성하는 계기임을 주장한다. 김현주는 자전적이라는 말과 자화상적이라는 말을 대비시킨다. 자전적인 것도 자화상적인 것도 모두 자신의 삶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자전적인 것은 언어 형태로 기억되는 것이고 자화상적인 것은 그림의 형태로 기억되는 것이다.

물론 그림 형태로 기억된다는 말은 체계적인 말을 구사하지 못하는 어릴 적의 경험이 흐릿하게 기억된다는 의미이다. 한무숙은 수필을 소설만큼 진지한 문학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그녀의 수필 쓰기는 소설쓰기라는 본연의 작업의 잉여분에 해당한다.

작가의 의도라는 측면을 차치하고 결과로써 평가하더라도 한무숙이 수필의 영역에서 새로운 문학적 실험이나 미적 경지를 개척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133 페이지) 한무숙은 역사적 사건을 즐겨 다루지만 실제 그 절박한 국면들이 겉으로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늘 소설의 원경(遠景)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가령 6.25 같은 사건이 배경일 때도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서 상처받는 사람들의 생활이나 심리 쪽으로 비중을 두고 묘사한다.

한무숙은 예술 작품에서의 표현은 사고가 시작되는 곳이 아니라 사고가 끝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182 페이지) 한무숙에게 소설 쓰기는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 인간의 의지나 욕망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미덕이란 무엇이며 신념과 도덕을 규정하는 인생의 가치는 무엇인가와 같은 근원적 질문에 도달하는 형식적 실험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 과정 속에서 작가는 생의 이면에 대한 탐구와 생의 총체성에 대한 해답을 작품 쓰기의 전체를 통해 정교하게 축조해가는 것이다.(228 페이지) 정재원, 이호규, 이명희, 이상진 등 여러 필자가 참여한 ‘한무숙 문학세계’가 작가의 작품들을 실제 읽고 더 많이 이해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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