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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배롱나무 꽃필 적엔 병산에 가라 (19126)번 [텍스터의 서재] 
저자 : 배국환
출판사 : 나눔사    [출판사의 서재]
출간일 : 2016-1-11
분야 : 여행/지리 도서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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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 배롱나무 꽃필 적엔 병산에 가라 / 출판사 : 나눔사
‘비극의 역사 현장’, ‘예술혼’, ‘자연, 사랑, 그리고..’ 등으로 이루어진 문화유산 19126 (★★★★☆)
글쓴이
흔적 날짜
2018.04.08 18:33:12 추천수
0
경제 관료 출신의 배국환이 쓴 ‘배롱나무 꽃필 적엔 병산(屛山)에 가라’는 문화유적이나 유물을 보고 생긴 시적 감흥을 글로 옮긴 자료집이다. 책은 3부로 구성되었다. ‘비극의 역사 현장’, ‘예술혼’, ‘자연, 사랑, 그리고..’ 등이다.

저자는 명성황후의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경복궁에 갈 때는 늘 건청궁(乾淸宮) 옥호루(玉壺樓)부터 간다고 한다. 역사의 수치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의 반영이다. 저자는 청령포라는 비극의 현장을 언급하며 문종에서 단종으로 이어진 적장자(嫡長子) 승계원칙이 비극의 단초가 되었다고 지적한다.(37 페이지)

문종이 아들을 살리고 싶었으면 동생인 수양대군에게 선위(禪位)하고 어린 아들의 훗날을 보장받는 것이 현명했을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강화의 광성보(廣城堡)를 이야기하며 우리나라의 쇄국정책은 당시 국제정세에 어두운 지배층의 잘못된 상황인식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잘못된 선택이라 결론짓는다.(45 페이지)

우리나라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전쟁으로 인해 목조 건축물기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고려 시대에 만들어져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이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 등이다.(극락전이나 무량수전은 모두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는 법당이다.)

저자는 수덕사 대웅전을 말하며 수덕여관을 소개한다. 많은 여성들이 수덕사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머물렀던 사연 많은(슬픈) 곳이다. 100여년 전 많은 여성들이 해방구로 여기며 새 세상을 꿈꾸던 곳이 수덕여관이다.(이 이야기를 들으니 경복궁 영추문 앞 보안여관이 생각난다.)

저자는 ‘예술혼‘편의 첫 순서로 세한도(歲寒圖)를 꼽는다.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也) 즉 날씨가 추워진 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들보다 늦게 시들게 됨을 알게 된다는 뜻으로 논어 자한(子罕)편을 출처로 한다.

저자는 충남 예산의 추사 고택과 제주도 대정마을의 추사 적거지(謫居地)를 가끔 들른다고 말한다.(77 페이지) 영조의 부마집에 입양돼 창의궁에서 자란 추사 김정희는 서촌에 흘러들어온 서당 훈장 천수경이 결성한 문학동인 송석원 시사(詩社)와 인연을 맺어 ‘송석원’이라는 바위각자를 썼다.(2017년 6월 14일 서울신문)

조선시대 영조가 등극하기 전에 기거했던 ‘창의궁 터’이기도 한 ‘백송 터’는 ‘추사체’로 잘 알려진 김정희가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이후 월성위의 봉사손(奉祀孫: 조상의 제사를 맡아 올리는 자손)으로 입양돼 4살부터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추사의 증조부인 김한신은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결혼해 월성위에 봉해졌고, 영조는 백송이 있던 이곳에 월성위궁을 내려줬다. 예전에는 인근 대로에 이곳이 창의궁 터였고 추사 김정희의 집터였음을 알리는 비석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없다.

‘통의동 백송’은 수명이 300년 넘었을 정도로 오래된 나무였다. ‘백송 터’에 설치된 안내문에 따르면 통의동 백송은 우리나라 백송(白松) 중 가장 크고(높이 16m, 둘레 5m) 수형(樹形)이 가장 아름다워 1962년 12월3일 천연기념물 제4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1990년 7월17일 태풍으로 넘어진 이후 고사돼 1993년 3월24일 문화재 지정이 해제됐고 같은 해 5월13일 벌목돼 지금은 밑동만 남아있다.(2017년 8월 14일 M이코노미)

2015년 여름 한국을 방문한 기 소르망은 모나리자에 견줄 수 있는 달항아리의 미적 가치를 왜 활용하지 않는가, 라고 직설적으로 꼬집었다.(80, 81 페이지) 수화(樹話) 김환기는 달항아리 모습을 화폭에 옮겼다. 고유섭 선생은 무기교의 기교라 했고 최순우 선생은 잘 생긴 부잣집 맏며느리를 보는 것 간다고 했다.(83 페이지)

나는 달항아리를 보며 아볼리 비블로 디나니떼 소노르(Aboli bibelot d'inanite sonore)란 말을 떠올린다. 울림이 없는 사라진 골동품이란 말이다.

저자는 경주에 가면 거의 감은사지(感恩寺址)를 들른다고 한다. 한적한 멋 때문이다.(85 페이지) 우리나라 탑파(塔婆) 역사의 최고봉이었던 우현 고유섭(1905 – 1944) 선생은 탑이 목탑에서 전탑(塼塔: 벽돌 전), 석탑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감은사지 석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바뀌는 과정의 시원(始原)이다.(90 페이지)

저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반포일과 창제 과정을 알 수 있는 문자인 한글을 소개한다.(예술혼편 ‘훈민정음해례본’) 이도다완(井戶茶碗)은 새미골 막사발의 일본식 표기이다.(116 페이지)

간송(澗松)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40대 부호 중 한 사람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1조원 가까운 재산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매년 기와집 150채에 해당하는 쌀을 소작료로 받아들였다.(138 페이지)

저자는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에서 한 말을 소개한다. 월출산, 도갑사, 월남사지, 무위사, 다산초당, 백련사, 칠량면의 옹기 마을, 사당리의 고려청자 가마터, 해남 대흥사의 일지암, 고산 윤선도 고택인 녹우당, 달마산 미황사와 땅 끝에 이르는 강진과 해남의 답사길을 남도 답사 1번지라 부른다는 내용이다.(147 페이지)

저자는 병산서원을 가장 한국적인 풍광으로 소개한다. 병산서원은 낙동강 상류의 산골짜기에 백사장을 앞뜰로 병산을 안산으로 삼아 자리잡은 풍산 류씨의 학당이다.(151 페이지) 임진왜란 시기에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柳成龍)의 후학들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배움터인 병산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끝까지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서원이다.(155 페이지)

“백천동 곁에 두고 만폭동 들어가니/ 은 같은 무지개 옥 같은 용의 초리/ 섯돌며 뿜는 소리 십리에 잦았으니/ 들을 때는 우레더니 와서보니 눈이로다“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금강산의 만폭동을 묘사한 부분이다.(221 페이지) 겸재(謙齋) 정선(鄭敾)도 금강산을 그렸음은 물론이다. 시대가 다르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더 찾아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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