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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문체반정, 나는 이렇게 본다 (19663)번 [텍스터의 서재] 
저자 : 김용심
출판사 : 보리    [출판사의 서재]
출간일 : 2012-9-9
분야 : 역사/인물 도서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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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 문체반정, 나는 이렇게 본다 / 출판사 : 보리
정조의 문체반정에 깃든 정조, 연암 박지원, 매화당 이옥의 다른 행보, 그리고 오늘의 의미19663 (★★★★☆)
글쓴이
흔적 날짜
2018.07.06 10:20:02 추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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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과 흙비가 오는 것을 하늘의 재앙이라 하고 가뭄과 홍수로 마르거나 무너지는 것을 땅의 재앙이라고 한다면 ( )는 사람의 재앙 중에서 가장 큰 것이라 하겠습니다.”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은 무엇일까? 아, 저 말이 누구의 것인지 먼저 말해야겠다. 답은 다산 정약용이다.

정약용은 내처 “만일 자제가 ( )를 일삼으면 경전과 역사 공부를 울타리 밑의 쓰레기로 여길 것이고 나라의 재상이 이를 일삼으면 조정의 일을 소홀히 할 것이며 부녀자가 이를 일삼으면 길쌈하는 일을 마침내 그만두게 될 것이니 하늘과 땅 아래 그 어떤 재앙도 이보다 더 심하겠습니까?“란 말을 하기까지 했다.

나는 요즘 정약용이 우려한 저것을 하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 ) 읽기이다. ( )에 들어갈 답은 패관잡서(稗官雜書) 요즘 말로 하면 통속 소설이다. 아니 정조(正租)나 다산(茶山)의 기준으로는 소설 자체가 문제였던 것이니 요즘 기준으로는 소설이라 해야겠다.

내가 읽고 있는 책(장편 ‘경애의 마음’)의 저자가 이런 말을 했다. “연애보다 기승전결 뚜렷한 사건이 있을까요”..이 분은 자신이 연애 이야기를 자꾸 쓰는 건 사람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란 말을 했다. 오랜만에 사랑 소설을 읽는 나는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경애의 마음’과 함께 읽는 김용심의 ‘문체반정 나는 이렇게 본다’를 보면 정조 시대에 패관잡서체 또는 소품체 문장을 썼다 해서 누군가 목이 잘리거나 피를 흘렸다는 기록이 없고 오히려 영조 시대에 조선 왕실을 모독한 중국 역사책 ‘명기집략(明紀緝略)’을 읽거나 갖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문인과 책 거간꾼들이 죽거나 유배를 당했으며 백여명의 주동자들이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벌거벗긴 채 두 손을 뒤로 묶여 죽임(아사餓死)을 당했다.

물론 정조는 중국 잡서의 수입을 금지하고 관리들을 혹독하게 훈계하였지만 책을 불사르거나 관리들을 중벌에 처하지 않았다.(‘문체반정 나는 이렇게 본다’ 77 페이지) 저자가 정조의 문체반정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렸을지 기대된다. 잘 모르지만 정조를 조선의 근대화를 막은 임금으로 보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논문에 대한 글 두 편이 생각난다. 하나는 20년도 더 전에 나온 김영민 교수의 ‘논문중심주의와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이고 다른 하나는 자현 스님의 ‘스님의 논문법’이다.

김영민 교수는 “문화적 예속 상태에서 자율적 비판 및 선택의 권리를 망실해 버린 채 맹목적으로 따라야만 했던 논문이라는 글쓰기”란 말을 했다.(‘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18 페이지) 반면 자현 스님은 “논문은 진실에 대한 탐구이자 추리소설” 같은 것으로 그 자체로 완전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가치를 내포하는 지성의 산물일 수 있다.“는 말을 했다.(‘스님의 논문법’ 124, 125 페이지)

정조는 ‘문원보불’, ‘육영성휘’, ‘사기영선’, ‘당송팔자백선’ 같은 책들을 펴냈는데 이런 책들이 오늘날 논문에 해당할지 아니면 교양 인문서에 해당할지는 모르겠다. 김기란은 학술논문은 본질적으로 성찰적이고 윤리적인바 기본적으로 읽기를 통한 쓰기 활동으로 이루어지며 성격상 주장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글, 학술의 장에서 지식을 구성하고 소통하는 것이라 정의했다.(‘논문의 힘’ 20 페이지)

김기란 저자는 논문에서 다른 사람들이 해결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라는 연구자에게는 최악임이 분명한 반응을 얻게 될 뿐이라 말한다.(‘논문의 힘’ 44 페이지)

나는 ‘해결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문제‘라는 말이 키워드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정조가 장려한 바른 문풍(文風)의 글을 오늘날의 인문서와 논문으로 폭 넓게 보고 싶다. 물론 폭 넓게라는 말은 느슨하게라는 말일 수 있다.

정조는 문체반정을 단지 문체의 문제만이 아닌 잘못된 제도 즉 과거제의 폐단을 고치는 방법의 하나로까지 넓게 생각했다.(’문체반정 나는 이렇게 본다‘ 80 페이지) 정조는 한문을 아는 양반들에게 대해서만 문체를 두고 닦달했다. 김용심(’문체반정 나는 이렇게 본다‘의 저자)은 정조의 정책은 문체반정이 아니라 문체순정(醇正) 또는 문체귀정(歸正)으로 불러야 맞고 중립적으로라면 문체정책이라 해야 옳다고 말한다.

정조 시대에는 오히려 문체순정, 문체귀정 등이라 불렸고 정조 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문체반정이란 말을 썼다.(81, 82 페이지) 사실 반정(反正)이란 말은 지극히 정치적인 말이다.

저자는 정조가 단행한 문체반정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조의 두 개의 정체성에 근거해 분석한다. 하나는 학자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측면이다. 정조는 문체가 세도(世道)와 통한다고 보았다. 정조에게 문체는 세상 풍속을 바로잡는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정조의 의도는 감정을 휘몰아치게 해 문제를 일으키는 소설의 문체를 바로잡아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데 있었다. 정조는 문체가 나빠진 원인을 세 가지로 보았다. 학문의 기본인 경학(經學)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고 사람들의 심성에 문제가 있어서이고 명말청초 소품과 패관소설이 읽히기 때문이라 본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큰 원인은 세 번째 것이다. 정조는 패관잡서가 사람의 이성이 아닌 비뚤어진 감성에 호소한다고 보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정조의 문체반정은 플라톤의 시인추방론을 연상하게 한다.

저자는 정조를 성리학이 말하는 도의 세상, 질서의 세상을 지켜야 하는 군왕으로 본다.(100 페이지) 정조는 플라톤의 철인 군주를 연상하게 한다. 저자는 문체반정을 노론의 천주교 공격에 맞설 논리 차원의 카드로 본다.(108 페이지) 정조는 사학(邪學) 즉 천주교를 없애려면 소품부터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110 페이지)

문체반정으로 이름이 거론된 사람들은 모두 노론이었다. 문체반정으로 훌륭한 자송문(自訟文: 반성문)을 쓰고 오히려 정조의 신임을 얻고 정조와 사돈이 된 김조순이란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정조 사후 세도 정치로 온 나라를 좌지우지했다.

정조는 남인의 약점인 천주교를 노론의 문제점인 패관소품과 대비시킨 것이다. 사학이 흥한 것은 정학이 망했기 때문으로 이는 곧 패관소품체로 정학을 망친 노론의 탓이라는 논리이다. 저자는 문체반정이 학문적 이유와 정치적 이유 모두와 관계했다고 본다.(113 페이지) 사실 정치와 학문을 분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식 - 권력'이란 푸코의 개념을 굳이 예시하지 않더라도.

저자는 정조가 아니었으면 문체반정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말한다.(115 페이지) 고전과 소설 사이의 미세한 틈과 그 사이에 잠재된 무시무시한 위험성을 한순간에 간파하는 능력이 없다면 할 수 없는 것이 문체반정이었다. 물론 시대를 거스르는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왜 잡스럽고 한심한 소설을 읽는지 모르겠다는 정조와 지나치게 가볍고 임금 앞에서 머리만 조아리는 노론 대신들의 대비 구도는 선명했다. 박지원은 흔들리지 않았다. 문체를 바르게 하려는 임금의 의도에 납죽 엎드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거스르지도 않았다.

박지원은 자신의 문체가 연암체라 불리든 소품체라 불리든 크게 개의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문체가 아니라 그 문체에 담겨 있는 실용의 의미, 백성들의 삶에 가장 도움이 되는 이로움을 찾는 일이었다.(152, 153 페이지)

정조가 기울어가는 조선 왕조에서 고대 유교의 아름다운 이상 정치를 꿈꾸었듯 박지원은 말뿐인 도덕보다는 백성들이 모두 넉넉하게 잘 사는 실학자의 꿈을 꾸었다.(154 페이지) 박지원과 더불어 문체반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이옥이다.

그는 "나는 요즘 세상 사람이다. 내 스스로 나의 시, 나의 문장을 짓는데 선진양한이 무슨 상관이 있으며 위진삼당에 무에 얽매인단 말인가"란 말을 했다.(159 페이지) 조선 후기에 이르러 서민 가사나 판소리, 잡가, 사설시조, 위항문학 등이 나타나 활짝 꽃을 피운 것은 사람들이 틀에 박힌 고전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소통에 목말라 했기 때문일 것이다.(171 페이지)

이옥은 성리학의 도 우선주의를 불편해 했다. 그가, 하찮아 보이는 돌들을 갖가지 돌이 있다고 간단하게 묘사하지 않고 각양각색의 돌들의 차이에 집중해 세밀히 묘사한 것은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도만이 최고라는 성리학의 획일주의에 대한 반발로 보기에 충분하다. 이 대립 구도는 이데아 대 시뮬라크르의 대립 구도를 연상하게 한다.

박지원과 이옥은 문체반정과 연관된 인물이지만 사상이 달랐다. 박지원이 뛰어난 해학과 재치로 우둔한 사람들을 일깨우는 글을 썼지만 이옥은 그 우둔한 백성들의 하나가 되어서 말없이 묵묵하게 그들의 모습을 기록했을 뿐이다.(187 페이지)

박지원이 여성들에 대한 악습을 비판했다면 이옥은 그 악습에 맞부딪히는 여성을 주제로 글을 썼다.(194 페이지) 이옥은 수천, 수만 가지 천지만물 중 가장 크고 묘하고 거짓 없고 참된 것으로 남녀의 정을 꼽았다.(196 페이지) 이옥은 여자를 솔직하고 따뜻하고 넉넉한 존재로 보았다. 그는 사람 중에 시정이 넘쳐 흐르는 아름다운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여자 말고는 없다고 보았다.(197 페이지)

이옥은 오직 도가 최고라는 갑갑한 유교의 세계관도, 남성만이 최고라고 떵떵거리는 가부장적 가치관도 인정하지 않았다. 저자는 정조만큼 문체 곧 글쓰기의 의미를 과대평가한 임금은 없다고 말한다.(206 페이지) 문체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같은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고칠 수 있다고 믿고 싶었던 모양이라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보면 정조의 생각은 관념적이다. 물론 정조는 문체반정을 일으킴으로써 결과적으로 문체를 과소평가했다.(206 페이지) 정조는 백성을 사랑했지만 그 백성들이 사랑하는 소설을 인정하지 않았다. 정조에게 아버지는 그립다는 말도 할 수 없는 애틋한 존재였지만 그래서 더욱 아버지를 닮지 않도록 노력했을 것이다.(209 페이지)

저자는 정조가 고전이 아닌 살아 있는 당대의 문체를 찾아 주어야 했다고 말한다.(213 페이지) 공자가, 망해가는 주(周)나라를 이상 국가로 여겼듯 정조는 이미 기울어가는 성리학을 표준으로 삼았다.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인 즉 가장 빛나는 하나의 달인 정조는 문체반정으로 나라를 이상국가로 만들고자 했다.

혼자만 들린다 주장하는 귀울림도, 스스로 절대 잘못 되지 않았다는 코골이도 모두 덜 떨어진 글로 본 연암이 글쓰기에서 강조한 것은 진실이다. 연암은 글을 잘 짓는 사람은 병법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 연암이 강조한 또 하나의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글을 쓰는 것이다. 연암은 옛것과 지금 것의 조화, 우아한 고전과 참신한 산문체의 어울림을 가장 훌륭한 문체라 보았다.(223, 224 페이지)

이옥은 정조나 박지원과 달리 거창한 문장론이나 문체론을 거의 쓰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쓴 글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을 뿐이다.(229 페이지) 이옥은 시가 말할 수 없는 것도 능히 말할 수 있고 시가 말하지 않으려는 것도 또한 능히 말하려 한다는 말을 했다. 이는 성리학 뒤에 감춰진 세상의 진면모, 동시대의 현실과 상황을 쓰겠다는 것이다.(232 페이지)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을 되새기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라는 말을 했다. 철학적이란 말은 형상을 잘 드러낸다는 말이다.(이정우 지음 ’가로지르기‘ 192 페이지) 시인에게는 혼란스럽게 뒤섞인 역사적 사실들 가운데 하나를 골라 더 리얼하고 생생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역량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옥이 말한 시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시는 다르다. 이옥이 말한 시는 유교 경전을 말한다.

저자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려 한 정조, 그 흐름의 정점에 있던 박지원, 기꺼이 그 흐름에 몸을 맡긴 이옥 중 누가 옳았는지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며 다만 그들이 저마다 자기들의 시대를 가장 치열하게 살아갔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 말한다.(242 페이지)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바는 저자가 정조의 역행이 조선 멸망의 빌미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정조만 문체반정을 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차별과 불평등을 불러오는 문체가 아닌 공평과 평등을 일으키는 쪽으로의 문체반정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한다.(252 페이지) 저자가 말하는 바른 문체란 말하듯, 솔직하고 쉽게 쓰는 것을 말한다.

모두가 평등한 대동 세상이 아직 오지 않았듯 우리 시대의 문체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258 페이지)이다. 저자가 말했듯 이제 시작이다. 이제 느릿한 박자, 문체반정, 신윤복과 김홍도, 격쟁, 정약용의 거짓말, 정조의 비밀편지 등으로 구성된 ‘정조의 문화투쟁‘이란 장이 있는 백승종의 ’역설(逆說)‘을 읽어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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