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좋은 책을 읽고 서평작성을 하시면 됩니다.
자유서평은 북스토리언의 서재와 연결되어 있으며, 도서정보를 입력하시면 나의 서재에서 자신의 도서를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제목 : 역사 추리 조선사 (19132)번 [텍스터의 서재] 
저자 : 김종성
출판사 : 인문서원    [출판사의 서재]
출간일 : 2018-4-2
분야 : 역사/인물 도서평가 :
이 도서는 yunjung님이 등록해주셨습니다.    책친구 추가 | |
도서정보 수정 도서정보 삭제
책제목 : 역사 추리 조선사 / 출판사 : 인문서원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추려면 추리를 해야... 19132 (★★★★☆)
글쓴이
흔적 날짜
2018.10.03 00:15:47 추천수
0
추리(推理)란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알지 못하는 것을 미루어 생각하는 것으로 어떤 판단을 근거로 다른 판단을 이끌어내는 것을 의미하는 추론(推論)과 같은 말이다.(물론 추리는 추리소설이란 장르 때문인지 추론에 비해 격이 떨어져 보인다.)

김종성의 '역사 추리 조선사'를 읽으며 내가 한 생각이다. 김종성의 책을 읽게 된 것은 김준혁 교수의 '이산 정조, 꿈의 도시 화성을 세우다'의 서평에 달린 댓글 때문이다. "어차피 그래봤자 조선은 이미 패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 청나라와 일본의 경제력과 외교력을 따라가기엔 조선은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칠순의 해인 1804년을 맞아 임오년 원수들을 사면하는 대화합의 정치, 그리고 상왕인 자신의 후원하에 순조가 이끌어가는 새 시대를 계획했었다. 정조가 4년만 더 살았다면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고 설령 패한다 해도 적들 역시 적잖은 피해를 입고 더 일찍 문제점을 발견해 19세기 말의 위기에 더 효과적으로 대처했을 것이란 게 저자의 진단이다.

사도세자는 정조 사망 99년 후인 1899년 고종에 의해 장조로 추존되었다. 그러니 앞의 말은 정조 재세시 복권되었을 것이라는 말로 정조가 4년만 더 살았다면 정순왕후와 그 추종세력들이 조선을 반개혁의 수렁에 빠지지 못하게 했으리라는 말과 이어진다.

일본의 경우 1868년 메이지 유신을 통해 개혁에 착수해 열강의 대열에 합류한 뒤 청나라를 압박하는 데 성공했다. 추론대로 정조가 4년만 더 살았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앞서 말한 댓글의 문제점은 결정론적 사고라는 데 있다. 어차피라는 말을 보라.

'역사 추리 조선사'에는 정조에 대한 논의 외에 위화도 ‘회군이 없었다면? - 고려가 임진왜란을 당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대비의 수렴청정이 없었다면? - 조선 왕조는 76년만에 망했을 것이다’, ‘폐비 윤씨가 사약을 마시지 않았다면? - 그래도 연산군은 폭군이 됐을 것이다’, ‘효종이 일찍 죽지 않았다면 북벌에 성공했을까? - 현실적으로 북벌 가능성은 낮았다’, ‘장희빈이 끝까지 중전 자리를 지켰다면? - 정약용 가문의 멸문지화와 엄청난 고난도 없었을 것이다’, ‘조대비가 안동 김씨를 미워하지 않았다면? - 조선은 망국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고종이 문호개방을 서두르지 않았다면? -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가 되지 았았을 것이다’ 등 민감한 이슈들이 많다.

'정몽주가 살았다면? - 정도전은 조선을 세우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에서 드러난 정몽주는 오로지 한 임금을 섬긴 신하가 아니라 지극히 권력지향적인 정치인이다. 저자는 만일 정몽주가 위화도 회군, 우왕 폐위, 창왕 옹립 및 폐위, 스승인 이색(李穡) 제거, 공양왕 옹립 등에 가담하지 않았다면 그가 진심으로 역성혁명을 반대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43 페이지) 정몽주는 군사부일체라는 유교적 가치보다 권력 획득이라는 정치적 가치를 우선시한 사람이다.

정도전은 이성계와의 술자리에서 한고조(유방)가 장자방(장량)을 쓴 게 아니라 장자방이 한고조를 쓴 것이란 말을 많이 했다. 조선 건국의 실질적 주역이 이성계가 아니라 자신임을 은근히 과시하는 말이었다.(53 페이지)

수양대군이 좋은 숙부였다면?이란 글에서 저자는 그렇다 해도 단종은 죽을 운명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안평대군을 거론한다. 안평은 수양의 동생이고 단종의 작은 아버지이다. 저자는 안평이 수양과 다를 바 없었다고 말한다.(74 페이지) 저자는 어린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난 문종 탓을 한다. 물론 나는 장자를 고집해 병약한 아들 문종을 왕이 되게 한 세종 탓을 하고 싶다.

저자는 주군 한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린 사람보다 세상을 위해 목숨을 버린 사람, 주군의 왕권 강화를 위해 희생한 사람보다 세상의 권리 보장을 위해 희생한 사람에게 후한 점수를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77 페이지) 저자는 그런 인물(후한 점수를 받아야 할 사람)로 신숙주를 든다.

그는 조선의 태평성대에 공헌한 사람이다. 신숙주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자 왜구가 골칫거리가 되었다. 저자는 신숙주가 변절자가 된 것이 백성들에게는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상술하지 않겠지만) 신숙주는 임진왜란 발발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83 페이지)

저자는 통치권의 바탕에 경제력과 군사력이 있었다며 연산군이 반정으로 물러난 것은 어머니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아서가 아니라 국고를 탕진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어머니가 사약을 받지 않았어도 물러났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물론 연산군 이전(성종)부터 국고는 악화되었다. 지주들이 납세를 기피하기 위해 흉년 피해를 과장해 보고한 까닭이다. 연산군이 일으킨 사화는 경제력이 없어 생긴 사태였다. 사림의 정치적 주장에 가진 게 없었던 연산은 폭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중종때 조광조가 등장(1515년)하지 않았다면 임진왜란때 더 힘들었을 것이라 말한다. 조광조가 사림파를 위한 개혁을 펼쳤고 사림파는 임진왜란을 극복하는데 큰 몫을 한 의병의 구성원들이었다는 논리이다. 중종이 조광조를 기용한 것은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조광조는 개혁의 기틀을 마련하고 중종에 의해 제거되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였지만 사림파는 정권을 잡았다. 물론 임진왜란 극복에 국민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이 책에서 자주 거론된 사건이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은 명나라와의 관계(무역) 복원을 위해 일본이 택한 전쟁이었다.(134 페이지) 앞에서 결정론을 비판했는데 저자도 같은 말을 한다. 세상은 필연의 법칙으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100 퍼센트 정해져 있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설사 어느 정도 예정되었다 해도 예정된 것과 실제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134 페이지)

임진왜란의 최대 수혜자는 여진족이었다. 그들은 임진왜란 후 급성장해 동아시아 패권국이 되었다.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청나라가 두 차례 호란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고 중원 정복을 시도하지도 못했을 것이다.(141 페이지) 일본은 임진왜란 패전으로 분발해 결과적으로 강력한 나라가 되었다.(151 페이지)

장희빈이 끝까지 중전 자리를 지켰다면 정약용 가문이 처참한 시련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195 페이지) 저자는 영조가 누군가 아들(사도세자)를 살려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고 말한다.(210 페이지)

이 말을 듣고 보니 영조가 세자를 곧바로 죽이지 않고 뒤주에 8일이나 가두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사도세자는 10살때부터 노론을 비판했다. 그가 집권했다면 훨씬 강도 높은 탕평정치가 펼쳐졌을 것이다. 저자는 사도세자의 탕평이 영정조의 그것에 비해 순수하고 원칙적이었다고 말한다.(212 페이지)

그러면 노론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을 것이다. 개혁 군주인 정조도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생각해보자. 이는 불가피한 점이었다.

조선은 500년간 지속된 나라이다.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세종은 누구나가 다 추앙하는 임금인데 정조는 그에 못미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지금 보니 세종 시대와 정조 시대의 차이 – 358년 - 보다 정조시대와 현대의 차이 –242년 - 가 더 가깝네요. 새삼 조선이 얼마나 오랜 왕조였는지..."란 말을 했다.

두루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이 조선 공부이다. 조광조와 중종의 관계, 이황과 사림의 관계, 연산을 물적 토대로 분석한 시각, 안평과 수양의 관계, 정몽주에 대한 새로운 앎, 수양이 아니었어도 단종은 죽을 운명이었다는 분석, 임진왜란과 동아시아 정세, 특히 두 차례의 호란과의 연관성, 임진왜란 발발 원인 등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정조가 4년만 더 살았다면 조선이 19세기 말의 위기에 더 효과적으로 대처했을 것이란 분석을 접하며 평소 지론을 확인해 기뻤던 한편 정조의 비극에 마음이 아픈 것을 새삼 느꼈다. 두루 공부해야 하리라. 조광조와 중종, 사림의 관계, 나아가 제자 양산보와 성수침 등의 은신 등을 함께 공부하고 싶고 김시덕 교수가 강조한 전쟁사를 공부하고 싶다. 아직도 제한적이지만 비교적 넓은 시각을 갖게 해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ㆍ이름 : ㆍ암호 : ㆍ인증키 :      ← 숫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