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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홍대용과 1766년 (11497)번 [텍스터의 서재] 
저자 : 강명관
출판사 : 한국고전번역원    [출판사의 서재]
출간일 : 2014-10-0
분야 : 역사/인물 도서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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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 홍대용과 1766년 / 출판사 : 한국고전번역원
진정한 세계화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11497 (★★★★☆)
글쓴이
흔적 날짜
2018.10.24 11:00:32 추천수
0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 1731 - 1783)의 '을병연행록(乙丙燕行錄)'은 을유(乙酉; 1765년)에서 병술(丙戌; 1766년)까지 홍대용이 서장관인 그의 숙부 홍역을 따라 북경을 기행하고 와 쓴 산문이다. 홍대용은 원래 한문으로 된 '연기(燕記)'를 썼으나 후에 어머니 등 여성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고쳐 써 '을병연행록'이라 하였다.

홍대용의 집안은 전통의 노론이었다. 벼슬보다 인격 수양에 열중했던 홍대용은 '논어'를 읽다가 공자를 비판하기도 했고 소론의 입장에서 노론을 엄중 비판하기도 했다. 강명관의 '홍대용과 1766년'은 홍대용의 '연기'와 '을병연행록'을 해설한 책이다.

'연기'의 내용과 '을병연행록'의 내용이 완전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담헌의 특징을 요약하는 말이 곧은 성품과 회의하는 정신이다. 담헌의 생에 전기가 된 사람이 실학자 나경적(羅景績: 1690 – 1762)이다. 담헌이 아버지 홍억(洪檍)의 부임지인 나주에서 만난 나경적은 중국과 일본을 거쳐 들어온 서양 자명종을 본떠 만들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담헌은 나주에서 나경적과 혼천의를 제작하며 서양 천문학과 수학을 접한 뒤 완성 3년 후인 1762년 북경으로 갈 수 있었다. 호기심을 풀기 위해서였다. 당시 조선에게 청의 수도 북경은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창이었다.

경화세족만이 북경에 갈 수 있었지만 벼슬을 하지 않은 담헌이 북경에 간 것은 경화세족의 자제 자격으로서였다. 북경을 유관(遊觀) 즉 돌아다니며 구경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담헌은 사신단의 자제였기에 더욱 자유로웠다. 당시 조선은 화이론(華夷論)과 소중화(小中華) 의식에 입각해, 명(明)을 무너뜨린 청(淸)에 복수해야 한다는 북벌(北伐)을 표방하고 있었다.

소중화 의식이란 명이 청에 짓밟히고 오염되었기에 중화 문명은 오직 조선만이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소중화 의식은 허위의식이었고 북벌은 실현 가능성이 없었다. 청은 1백년이 넘는 동안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랑캐의 나라인 청에 가는 담헌으로서는 화이론과 소중화 의식으로 무장한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담헌은 청나라의 놀라운 물질문명에 충격을 받고 그들과 너무 대조적인 조선의 낙후한 현실을 착잡하게 떠올린다. 담헌이 중국을 방문한 것은 서양 과학 기술을 접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수준 높은 선비를 만나 대화를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담헌은 중국 여행을 위해 체력 훈련도 하고 중국어도 익혔다.

1766년 2월 담헌은 엄성과 반정균을 만났다. 조선 사신단의 비장(裨將) 이기성이 안경을 사기 위해 유리창(瑠璃厰)에 갔다가 둘을 알게 되어 담헌에게 소개한 것이다. 유리창은 서적, 서화, 골동품, 각종 문방구 등이 몰려있는 거대 상점가이다. 담헌은 엄성, 반정균 등과 필담을 나누었다. 담헌은 강력한 대명의리론자였고 성리학 근본주의자였다.

서양 과학에 대해서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담헌은 청에 가기 전 그 발전상에 대해 들었지만 직접 경험하며 느끼게 된 청은 충격 자체였다. 관념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담헌은 조금씩 생각을 바꾸게 된다. 청은 중국 역사상 가장 큰 나라를 달성했다. 청의 그런 놀라운 발전상은 조선을 쓸쓸하고 가련하게 느끼게 했다.

결국 그 현격한 격차는 훗날 박제가와 박지원으로 하여금 북벌이 아닌 북학(北學)을 외치게 했다. 당시 조선은 청이 명을 강제로 몰락시켰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부패, 무능한 명이 스스로 반란을 초래했고 그 난을 청이 평정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중원이 청의 차지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책('홍대용과 1766년')의 하이라이트는 홍대용이 엄성, 반정균, 육비 등과 나눈 국적을 초월한 우정을 상세히 소개한 부분이다. "담헌은 중국 여행 내내 중국 지식인과 만나 대화하는 일을 간절히 원하였다."(151 페이지) 물론 주자학 근본주의자 담헌과 양명학, 불교 등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엄성, 반정균의 사상적 기반은 판이했다.

그들은 수준 높은 필담을 주고 받았는데 엄격한 담헌과 달리 반정균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속내를 깊이 표현할 정도까지에 이른다. 조선의 지식인 담헌과 청의 선비이면서도 소탈한 데다가 홍대용을 변방의 조선인이라 하여 거만하게 대하지 않았던 엄성, 반정균은 곧 서로 매료되고 만다.

담헌은 계속 성리학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졌지만 완고하지는 않았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들은 이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이가 된다. 담헌은 풍류와 기생에 관심을 보이는 반정균에게 여색을 멀리할 것을 충고한다. 담헌은 두 사람에게 진실한 공부를 해 속유(俗儒)가 되지 말 것을 충고했다.

담헌은 두 사람을 간절히 사랑하는 나머지 기대가 깊어 당부하는 것이라며 거칠고 졸렬한 말이지만 음미해볼 것이 있으니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말까지 버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담헌은 유가의 성인인 순임금이 동이이고 문왕이 서이이며 왕후장상의 종자가 없고 누구라고 하늘의 때를 잘 받들어 이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린다면 천하의 의로운 주인이라는 말을 듣고 사유의 변화를 일으킨다.

저자는 담헌으로서는 중국의 세 선비가 자신에게 설파했던 주자 학설에 대한 비판을 수긍하기 어려웠지만 그 활발한 반론의 제기야말로 조선 지식인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라는 말을 한다.(245 페이지) 담헌은 보수 세력을 대표하는 김종후와 논쟁을 한다.

이 일은 담헌으로 하여금 화이론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250 페이지) 담헌은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는 주장을 했다. 이 생각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생각과 뿌리가 같다. 저자(강명관)의 결론은 인종과 국가, 언어를 넘어 인간으로서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세계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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